<환경동화> 페트병 속에 든 편지

▲ 최주섭 동화작가
▲ 최주섭 동화작가

6월 중순,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해수욕장이 평소보다 보름이나 빠르게 열렸다. 첫날부터 바닷가에는 화려한 수영복 물결이 넘쳤다.
봉두는 바쁘게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생수를 담았던 페트병을 마대에 담기 시작했다. 목에 건 수건으로 이마에 땀을 씻어냈다.
“날씨가 장난이 아니네.”
조금 떨어진 파라솔 안에 낮 익은 소녀가 가족들과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봉두는 무의식적으로 모자를 눌러 쓰고 뒤로 돌아섰다.
“나미가 나를 알아봤을 까?”
봉두는 빠른 걸음으로 나미를 멀리 피해 다른 곳으로 갔다.
며칠 전 봉두는 TV에서 ‘쓰레기는 돈이다’라는 뉴스를 보았다.
「대형 유통점마다 페트병 자동회수기가 설치됐습니다. 페트병을 자동회수기에 넣으시면 포인트 10점을 드립니다.」
봉두는 눈이 번쩍했다.
“여름방학동안 페트병을 모아볼까? 집에 있는 것은 몇 개가 안 되고···.”
봉두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페트병이 많이 버려지는 곳이 어디지?”
봉두는 해마다 해수욕장에서 함부로 버려지는 페트병 때문에 환경미화원들이 밤새도록 일한다는 지역 뉴스가 생각이 났다.
“해수욕장으로 가보자.”
봉두는 페트병을 줍는 것이 부끄러웠으나 용기를 냈다.
“먼저 페트병 자동회수기가 설치되어 있는 대형마트에 가보자.”
페트병 자동회수기 앞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페트병을 회수기 구멍으로 집어넣었다. 갑자기 ‘삐-이’ 소리가 나며 페트병이 구멍에서 도로 나왔다. 기계음이 들렸다.

「마개는 분리하고 병에 붙어있는 라벨도 떼어 낸 후에 투입구에 다시 넣어주세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개는 분리하고, 라벨은 떼어내라는 얘기네?”
옆에서 구경하던 봉두가 아는 체를 했다.
“여기에 페트병 분리배출 요령이 적혀있어요.”

「바다 살리는 일을 함께 해요! 페트병 마개와 라벨은 분리하여 옆에 있는 작은 통에 넣어주세요. 병 속에 남아있는 물은 다 마신 후 넣어주세요. 그 다음 회원카드 또는 신용카드를 넣어주세요. 페트병 한 개에 10점의 포인트를 적립해드립니다. 1000점이 넘으면 물건을 사거나 또는 소아암 환자 치료비로 기부할 수도 있습니다.」

봉두는 넓은 챙의 모자를 쓰고 수영 안경까지 끼고 해수욕장 입구로 다시 들어왔다. 파라솔 사이를 오가며 버려진 페트병을 마대 자루에 담기 시작했다. 모래 속에 반쯤 박힌 페트병도 꺼냈다. 병 속에는 물이 조금 남아있었다. 남은 물을 모래 위에 부었다.
봉두가 얼굴을 찡그렸다.
“백두산에서 가져온 생수를 먹다 말고 버리다니···.”
봉두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모래 틈에 반짝이는 페트병들을 찾아냈다. 쉬지 않고 열심히 마대를 채워나갔다.
백사장의 파라솔 밑에서 피서객들이 봉두를 격려했다.
“바다쓰레기 자원봉사대원! 수고가 많아요.”
그때, 바다 속에서 파도타기를 마치고 백사장으로 올라오던 나미가 소년을 발견했다.
“봉두 같은데?”
나미가 소년에게 다가갔다.
“너 봉두 맞지?”
봉두가 멈칫하다가 수영 안경을 벗었다. 나미가 웃었다.
“너 뭐하는 거니?”
봉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보면 모르니, 페트병을 줍고 있어.”
나미가 마대 속을 들여다보았다.
“너 해수욕장 자원봉사대원이니?”
봉두가 빙그레 웃었다.
“그런 셈이지.”
나미가 큰 파라솔을 가리켰다.
“우리 파라솔 밑으로 가자. 거기에도 페트병이 몇 개 있어.”
나미가 봉두를 엄마와 아빠에게 소개했다.
“얘는 내 학교 친구 봉두예요.”
봉두가 고개를 숙였다.
“나봉두입니다. 안녕하세요?
엄마가 웃었다.
“나 봉두라니? 제가 봉둡니다 라고 해야지.”
봉두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제가 나-봉-두라구요.”
아빠가 봉두의 표정을 살폈다.
“성이 ‘나’씨라는 거니?”
나미가 깔깔 댔다.
“성이 나고 이름은 봉두예요.”
엄마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얼음상자에서 페트병 생수를 꺼내 봉두에게 주었다.
“미안해, 시원한 물 좀 마시렴.”
아빠가 웃음을 멈추고 물었다.
“봉두 학생은 무더운 백사장에서 무얼 하는 거야?”
봉두가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씩씩하게 대답했다.
“버려진 플라스틱 병을 모우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한해에 버리는 페트병이 49억 개래요.”
아빠가 눈을 크게 떴다.
“바다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는구나. 환경운동가 파이팅!”
엄마가 나미의 눈치를 살폈다.
“나미도 친구를 도와주면 좋겠네.”
봉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나미가 입술을 쭉 내밀었다.
“난 바닷물에 들어가는 거가 좋은데.”
아빠가 봉두에게 바닷물에 들어가기를 권했다.
“봉두 학생! 잠시 바닷물에 들어가 몸을 식혀 봐요.”
나미가 봉두의 손을 잡고 바다를 향해 달렸다. 잔잔한 파도가 몸에 부딪치니 봉두의 마음도 상쾌해졌다. 봉두는 바닷가에 살아서 마을에서는 헤엄 잘 치는 아이였다. 나미를 따라 바닷물 속에 몸을 던졌다.
봉두가 파도 위에 반쯤 떠있는 물체를 발견했다.
“물속에 뭔가가 있는데?”
봉두가 페트병을 건져냈다. 병속에 물이 반쯤은 남아있었다. 병 속에 작은 종이쪽지도 보였다.
“뭐지?”
봉두가 나미를 불렀다.
“나미야! 백사장으로 올라가자.”
나미가 봉두를 따라 나오면서 웃었다.
“넌 바다 속에서도 페트병을 줍는 거니?”
“아냐, 수영하는 사람들이 다칠까봐.”
봉두가 페트병을 열고 물을 버렸다. 종이쪽지가 빠져나왔다. 나미가 물었다.
“중국에서 떠내려 온 생수병인가 봐, 종이쪽지는 뭐야?”
봉두가 종이쪽지를 주어 펴보았다. 한자와 영어 알파벳으로 뭔가가 적혀있었다.
나미가 아는 채를 했다.
“영어 편지는 내가 읽어볼 게.”
나미와 봉두가 편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이 편지를 읽는 친구에게! 나이는 열두 살, 이름은 지엔. 내가 살고 있는 충칭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인 장강 상류에 있어. 이곳은 장강삼협이라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야. 장강에 험난하고 깊은 계곡 세 곳을 왕복하는 크루즈는 전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야. 이곳 계곡은 관광객들이 버리는 페트병 등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어, 나는 때때로 계곡을 돌아다니며 바위틈에 박혀있는 페트병을 모우고 있어.」

나미가 편지를 읽다가 호호 웃었다.
“야 봉두야! 너 같은 애가 중국에도 있어.”
봉두가 편지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나는 산촌에 살고 있어 중국의 수도인 북경이나 바다가 보이는 도시를 가보고 싶어. 우선 계곡에서 주운 페트병에 내 마음의 편지를 넣어 강물에 띄워 보낸 거야. 어디에 사는 누가 내 편지를 발견할까 궁금해. 내 글을 다 읽어주어서 고마워. 안녕! 중국에서 지엔으로 부터.」

나미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봉두를 쳐다보았다.
“지엔과 너는 태어나가 전부터 인연이 있나봐.”
봉두가 눈을 크게 뜨고 나미에게 말했다.
“지엔에게 편지를 보내볼까?”
나미가 고개를 끄덕했다.
“아빠에게 가서 한자로 쓰인 내용도 읽어 달래자.”
나미가 파라솔 밑에서 수박을 먹고 있는 아빠에게 다가갔다.
“아빠 바닷물 속에서 페트병과 편지를 건져왔어요.”
아빠가 먹던 수박을 내려놓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엄마가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봉두는 물속에서도 페트병을 줍고 있구나. 호호.”
아빠가 편지 내용을 훑어보다가 봉두에게 시선을 돌렸다.
“중국어 글도 영어 내용과 같구나. 생수병으로 맺어진 귀한 인연을 이어가야겠지?”
봉두가 중국 충칭에 사는 지엔에게 쓴 편지를 국제우편으로 보냈다.

「지엔에게, 해수욕장 물속에 둥둥 떠다니던 페트병에서 네가 보낸 편지를 발견했어. 나는 한국의 남해안에 있는 통영에서 살고 있어. 이름은 봉두야. 나는 방학 때 환경체험으로 백사장에서 페트병을 줍고 있어. 해수욕장 피서객들이 생수를 마시고 페트병을 백사장에 함부로 버리는 거야. 지저분하고 발을 다치기도 해. 중국 관광지에서 페트병을 모은다는 지엔이 너무 반가웠어. 한번 만나보고 싶다. 한국 통영에서 봉두와 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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