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순종의 꽃…‘당신을 따르겠습니다’

▲ 박대문 박사(칼럼니스트)
▲ 박대문 박사(칼럼니스트)

산천에 아름다운 생명의 빛이 번져나가는 봄의 계절, 전국 곳곳에 곱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집니다. 코로나 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으로 봄이 왔음에도 바깥 활동이 여의롭지 못해 답답하기 그지없는 올봄이었습니다. 각 지역의 봄철 행사, 매화, 산수유, 진달래, 벚꽃 등 각종 축제가 중단된 채 해당 지역에 출입마저도 통제된 암울한 봄날이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지역 간 이동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어렵사리 다녀온 봄꽃 탐방지가 너무도 인상적이었기에 그 감동의 현장 모습을 함께 공유하고자 그곳을 소개하는 한편 그 기쁨도 함께하고자 합니다. 특히 야생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이곳을 소개하는 한편 꽃 탐방에서의 감동과 그 상황을 전하고자 합니다.

소개하고자 하는 곳은 전북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 뒷산의 금낭화 자생 군락지입니다. 잘 알려지지도 않았거니와 산에 접근 등산로도 나 있지 않은 무명 계곡입니다. 그곳에는 금낭화가 사방 20~30m의 지역에 거쳐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었습니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동호인 3~4명이 단출하게 팀을 짜서 다녀오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물론 금낭화 자생지가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이었지만 그곳까지 가는 동안 만났던 피나물 군락지와 그 외 귀한 야생화도 함께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 운주면 금당리 뒷산 약도
▲ 운주면 금당리 뒷산 약도

탐방 장소 및 약도 (전북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 뒷산)

먼저 ‘운주면 금당보건진료소’를 목적지로 서울에서 약 3시간 30여 분 자동차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는 마을회관도 함께 있습니다. 그곳에 주차하고 금당리 마을 뒷산으로 가는 마을 길 ‘금고당로’를 따라 계곡으로 들어서면 길이 끝납니다, 여기서부터는 길도 없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합니다. 아마도 숲이 덜 우거진 봄철에는 가능하지만, 숲이 우거진 한여름에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계곡을 헤집고 올라가다 보니 상산나무의 새순이 한참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상쾌한 상산나무 향이 강렬하게 풍겨 가슴이 시원해질 정도였습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보니 발밑 길섶에는 제비꽃, 산괴불주머니, 족도리풀, 홀아비꽃대가 다투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매화말발도리의 하얀 꽃도 곱게 피어 있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귀하디귀한 백작약 수그루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백설처럼 하얀 꽃판에 쏟아지는 5월의 따스한 햇살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 하얀 광채가 주위를 밝히고 있었습니다. 백설같은 백작약꽃의 함박웃음에 발걸음이 멈춰지고 숨마저 막힐 듯한 기쁨의 순간이었습니다.

▲ 홀아비 꽃대
▲ 홀아비 꽃대

눈부시게 하얀 아름다운 꽃 모양과 소리 없이 배시시 웃는 수줍은 산골 아씨와 같은 미소가 참으로 매혹적이었습니다. 약효가 좋다고 알려져서 무분별한 불법 채취로 산삼보다도 더 구하기 어렵다는 야생의 백작약이 튼실하게 자라 꽃을 피우고 있으니 감동이었습니다. 이곳이 선녀봉 자락이라서 마을 주민들의 심성이 착해서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금 올라가니 계곡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피나물이 군락지를 이루며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계곡을 덮는 피나물 군락지에 들어서니 꽃세상에 들어앉은 듯했습니다. 피나물꽃과 함께 복수초도 커다란 군락지를 이루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피나물이 피기 직전에는 복수초가 넓게 퍼져 장관을 이루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온통 산 계곡이 피나물꽃 바다이었습니다. 노란 황금 물결, 피나물 꽃 바다에 풍덩 빠져 노랗게 물든 봄날 하루가 황금빛 풍랑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듯싶었습니다.

▲ 백작약
▲ 백작약

험한 계곡의 비탈길을 겨우겨우 헤집고 능선에 올라서니 하늘 높이 솟은 느티나무와 잔털벚나무가 경이롭습니다. 주로 마을 어귀나 공원에서만 만났던 느티나무가 높이 서 있고 소교목인 줄만 알았던 잔털벚나무가 느티나무와 햇볕 쟁탈전을 벌이느라 함께 자라서 놀랄 만큼 하늘 높이 솟아있었습니다. 마을 어귀나 주위에서만 보았던 느티나무를 능선 자생지에서 만난 것도 드문 일입니다. 잔털벚나무도 느티나무 못지않게 위로 치솟아 나무의 키가 족히 10m는 넘어 보였습니다. 느티나무와 잔털벚나무 새 이파리 사이로 드러나는 봄 하늘이 어찌나 고운지, 다른 세상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강한 생령(生靈)이 터질 듯 뻗치는 신록의 빛깔, 담록(淡綠)! 진초록도 아닌 연한 녹색, 이 생명의 빛깔이 번지는 능선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평온한 마음이 적당히 고단한 몸과 한데 어울려 세상천지에 평화와 여유가 가득 넘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 피나물
▲ 피나물

다시 기운을 차려 능선을 타고 오르다가 하산길 능선을 잡고 반대편 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가파른 비탈길과 돌무더기 너덜겅을 타고 내려오면서 수북이 쌓인 낙엽 더미에 미끄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맞닥뜨린 금낭화 군락지, 바로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돌무더기 널브러진 산 계곡 한쪽이 온통 금낭화로 뒤덮여 계곡 일대가 붉은빛으로 가득했습니다. 이번 탐사에서 만난 금당리 뒷산 금낭화 자생지는 제가 만난 야생 금낭화 군락지 중에서는 최대 규모의 자생지이었습니다.

금낭화는 그동안 중국이 원산지인 귀화식물로 여겨졌으나 최근 1990년대에 천마산, 가평, 설악산 등지의 중부지역 산지에서 자생하는 것이 확인되어 한국도 금낭화 원산지임이 밝혀졌습니다. 특히 전북 완주의 동상면 대아리, 속칭 가마골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추정되는 금낭화 자생군락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곳 역시 전북 완주군에 속하고 있어 이번 탐사지인 이 지역 일대가 금낭화 자생의 적지인가 싶었습니다.

▲ 느티나무, 잔털벚나무
▲ 느티나무, 잔털벚나무

보면 볼수록 꽃 모양이 곱고 별스러운 금낭화꽃입니다. 한자어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비단 주머니를 닮은 꽃입니다. 산지의 돌무더기나 계곡에 자생하지만,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도 인기가 높아 집, 정원, 공원에 많이 심는 꽃입니다.

곱고도 아름다운 꽃이 아치형으로 길게 뻗은 꽃대에 이쁜 복주머니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꽃 무게에 아래로 휘어진 채 꽃을 달고 있는 꽃대가 고개 숙인 고운 자태로 보여 겸손과 순종의 꽃이라고도 합니다.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입니다.

심장 모양의 붉은 꽃과 순수의 상징처럼 하얗고 맑은 꽃술 머리가 줄줄이 매달려 시선을 강탈하는 금낭화! 빨간 비단 주머니 꽃 모양이 예쁘고 깜찍해서 ‘며느리주머니’라는 고운 별칭이 있는가 하면 빨간 꽃잎 끝의 하얀 꽃술 머리가 하얀 밥풀을 연상 시켜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에 구박받았던 며느리의 한이 서린 며느리 밥풀과 유사한 슬픈 전설도 담고 있는 꽃입니다. 거대한 금낭화 자생지를 만난 기쁨과 감동의 회상을 금낭화 시 한 수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 금낭화, 어사화
▲ 금낭화, 어사화

금낭화(金囊花)

돌무더기 널브러지고
잡목 무성한 으스름 계곡
골바람 한 점 휘돌 적마다
붉고 하얀 꽃물결 술렁인다.

방울인 양 맑은소리 들릴 듯 말 듯
다소곳이 고개 숙인 고운 자태.
종잡을 수 없는 진기한 모양새.
별스러운 꽃 모양에 엉키는 생각도 많다.

따스한 붉은 심장과 순수의 하얀 꽃술 머리 모양,
곱고 앙증스러운 비단 노리개인 듯도 하고
장원급제 어사화의 기품도 어른거리고
밥풀에 얽힌 며느리의 한(恨)이 서린 듯도 하다.
골바람은 알거나? 곱고도 서러운 사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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