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사회연구소, 정의로운 전환 선언 후 3년 첫 정책 진단 결과 발표
​​​​​​​해법은 사회적 주류화 통한 탈석탄 정책의 사회정치적 정당성 확보해야

[조원상 기자]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 정책은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할 수 있을까? 발전 부문에서 정의로운 전환 실현의 가장 큰 어려움은 국내 석탄발전소 지역이 이미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위기에 놓인 취약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 정책은 석탄발전소 폐쇄와 지방소멸의 이중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가 정의로운 전환을 선언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기 시작한 지도 거의 3년이 되어간다. 현행 정의로운 전환 정책에 대한 실효성 진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회적 주류화와 정의로운 전환

기후사회연구소가 2020년에 발표한 보고서 공정한 전환을 위한 한국적 맥락 탐색: 석탄발전 부문을 중심으로의 후속편으로 최근 석탄발전소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사회적 주류화 방안 : 소멸 위기 지역에서 어떻게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할 것인가?’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실효성을 진단한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국내 첫 보고서인 이번 연구보고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회적 주류화(social mainstreaming)’. 사회적 주류화란 사회적 가치와 목표를 고려하여 정책 분야에서 사회 부문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고서를 집필한 한빛나라 소장은 정의로운 전환을 사회적 주류화의 일환으로 바라보면, 국내 정의로운 전환 정책이 놓치고 있는 점과 개선해야 하는 점이 쉽게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최근 기후·에너지 분야에서 사회적 주류화에 대한 요구가 높다. 유럽경제사회위원회(EESC)사회적 딜 없이는 그린 딜도 없다고 일갈했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정의로운 전환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사람 중심의 전환을 제안했다. 유럽의 대표적인 기후변화 싱크탱크인 E3G가 내세우는 사회적 그린 딜(Social Green Deal)’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역내 단일시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경제통합의 부진 원인을 사회정치적 정당성 결여로 진단하고, 그 이후로 경제 정책의 품질과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사회적 주류화를 추진했다. 마찬가지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빠른 탈석탄이 필요하지만 사회적 정책흡수력 부족이 걸림돌로 작용하자, 국제사회는 에너지 기술의 전환과 사회적 전환 간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의로운 전환을 채택했다. , 정의로운 전환은 탄소중립 정책의 사회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주류화의 일환이다.

저자는 국내 석탄발전소 지역의 취약한 여건은 정의로운 전환의 실현을 더욱 어렵게 하며, 그 해법은 사회적 주류화를 확대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탈석탄이 초래하는 지역사회의 위기

독일 루르 지방은 국내에서 성공적인 탈석탄 사례로 자주 언급되지만, 현실은 지금도 높은 실업률과 불평등 문제를 겪고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독일의 연구자들은 루르 지방의 경험을 많은 것을 성취했지만 얻은 것은 별로 없다(much achieved, little gained)”로 요약했다. 정부가 막대한 규모의 국가 보조금을 편성하여 지원했지만 쇠퇴하는 석탄산업계에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기란 불가능했고, 지역의 사회경제적 문제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해외 선행 사례들에서, 탄광 및 발전소 폐쇄는 인구감소와 빈곤율 증가, 지역 정체성 상실로 이어졌고, 젠더·인종 문제 등 기존의 불평등을 확대하여 사회적 불안정을 심화했다.

한국에서 석탄발전소 폐쇄가 지역경제를 붕괴한다는 것은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기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는 다르다. 폐쇄 확정된 28기의 석탄발전소가 입지한 지역 가운데 보령시, 옹진군, 태안군, 고성군, 하동군은 모두 인구감소지역이며, 그중 4개 군은 지방소멸 위기지역이다.

캐나다의 아연광산 지역인 파인포인트(Pine Point) 마을은 경제다각화의 잠재력이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체계적인 소멸(managed retreat)’을 준비했고, 폐광 이후 지역주민들이 더 나은 경제 기회가 있는 곳으로 이주하도록 지원한 뒤 소멸했다.

저자는 현재 시점에서 체계적 소멸은 국내 석탄발전소 지역들에게 극단적인 선택지임이 분명하나, 가속화되는 저출산·고령화, 인구유출, 지방소외 추세를 고려한다면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무렵에는 현실적인 옵션일는지 모른다고 설명한다.

현행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실효성 진단 결과

보고서는 국내 석탄발전소 폐쇄 정책의 사회적 영향을 지역적 영향 고용 소득분배, 사회적 보호와 포용 교육과 훈련, 관련 시스템 공공보건과 안전, 보건 시스템 공공기관 거버넌스, 참여, 좋은 행정 기본권 에너지 사용의 9가지 이슈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평가한 다음,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현행 정의로운 전환 정책이 부정적인 사회 영향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는지 진단했다.

진단 결과, 현행 정의로운 전환 정책은 석탄발전소 폐쇄가 지역에 미치는 다양한 부정적 사회 영향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석탄발전소 폐쇄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발전업계 노동자뿐 아니라 지역인구, 소득, 교육·보건 등의 공공서비스, 지방재정과 행정, 기본권 등 매우 다양한 부문에까지 미쳤으나, 현행 정의로운 전환 정책은 지역 일자리와 기업 지원에 국한돼 광범위한 부정적 영향을 다루는데 역부족이었다. 또한 석탄발전소 지역의 사회적 메가트렌드를 간과해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 유효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국내 석탄발전소 지역은 대부분 인구가 적고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농어촌 지역인 동시에, 인구감소과 지방소멸 위기에 처해있는 취약지역이다. 이러한 지역의 여건과 메가트렌드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당장 눈앞의 석탄발전소 폐쇄만 고려한 편협하고 소극적인 접근으로는 지방소멸의 거센 흐름을 거슬러 정책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또한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 정책은 특정 섹터와 지역에서 발생하는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수립된 탄소중립 정책의 하위정책이자, 발전 부문에 종속된 사회 정책으로서 주변적이다.

정의로운 전환 정책이 발전 부문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조건부적인 사회 정책이어서는 정책이행기반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또한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 정책은 취약계층의 피해 최소화에 중점을 두는 소극적인 접근방식을 따름으로써, 사회적 보호와 포용, 기후정의 실현 등 보편적인 사회 가치 실현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더 나은 정의로운 전환 위한 사회적 주류화 방안

보고서는 이러한 한계점에 대한 개선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인구, 교육과 지방대학, 교통 인프라, 지방재정, 복지시스템, 거버넌스 등 다양한 섹터와 통합하고 연계를 확대해야한다. 그럼으로써 정책 시너지를 제고하고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더불어 유럽이 정의로운 전환 정책 프레임워크를 탄소중립뿐 아니라, 디지털 전환과 인구구조 변화라는 주요한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맥락으로 확장하여 수용했듯이, 한국도 도시화, 다문화 사회 전환, 미래교육 변화 등 다른 전환 섹터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주류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지역의 특성과 한계를 고려한 지역 중심적 접근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의 정의로운 전환 계획이 석탄발전소 지역의 특성과 고유 자산, 역량 등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지역의 점진적인 사회변화를 유도하는 메가트렌드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존의 지역산업을 고도화하고 다각화하는 방향에서 지역 중심의 미시적 접근을 강화하고, 지역의 사회적 역량을 높이면 장기적으로도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셋째,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사회권 보장을 위한 보편적인 정책으로 격상시켜 이행기반을 다져야 한다. 유럽은 정의로운 전환을 유럽 최상위 사회정책에 해당하는 유럽 사회권 기둥(European Pillar of Social Rights)’과 연결시켜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사회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행기반을 다졌다.

한국도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발전 부문에 종속된 지류정책으로 두지 말고, 최상위 사회목표 내지는 사회가치를 실현하는데 기여하는 사회 부문의 본류정책의 일환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소프트 거버넌스(soft governance)’의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이해관계자 참여를 활성화해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거버넌스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다른 부문 정책들과 통합적으로 연계하고 지역의 다양한 중장기 계획들과 통합하고 조율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소프트 거버넌스의 수단에는 사회적 대화 말고도 통합영향평가, 모니터링과 권고안 공개, 동료리뷰와 동료학습 등이 있으며, 다양한 수단을 함께 활용하면 협의와 조율에 기반한 참여형 정책 거버넌스를 활성화하기에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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